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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비사자] 고양이 下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해우는 어느새 깔개와 함께 거실 한편에 떡하니 자리 잡아 자랑스러운 가족의 일원이 되어있었다.


"해우야."


신에게 여가 그런 것처럼, 여에게 해우도 매일 봐도 매일 예쁘고 매일 좋은 존재인지 여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해우를 불러재꼈다.

그것, 쓸데없이 도도하기만 해서 불러도 오지도 않는데 뭐가 그리 좋을까. 여가 해우를 부를 때마다 신은 해우보다도 먼저 여의 품으로 안겨들었지만 번번이 여의 품에서 밀려나게 되는 것은 신이었다. 앙칼진 한 마디와 함께.


"아, 저리 가!"


그러다가 일이 터진 것은 딱 해우를 만났던 날마냥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공기가 얼어붙어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품에 고양이를 안고 가게로 들어오는 신의 모습에 선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고양이를 받아들었다.


"아니, 오라버니. 웬 고양이예요?"

"폐하가 주워와서 고민하다 오늘에서야 치웠다."


어쩐지 몰래 들고 온 듯한 티가 팍팍 나더라, 선은 웃으며 고양이를 눈앞에 훽 들어보였다.


"몸은 괜찮고요?"

"온몸에 붉은 꽃이 피었더라."

"두 번째 해우인가요, 그럼."


일을 치르고 신이 돌아온 후, 평소처럼 다 뜨이지도 않은 눈으로 슬리퍼를 딕딕 끌며 해우를 부르며 거실로 나간 여는 항상 있던 그 자리에 해우가 없자 제 뒤에서 눈만 굴리고 있는 신에게 달려들었다.


"야! 분명 네 짓이지. 해우 어디 갔어."

"몰라."

"해우 어쨌냐고!"

"모른다니까."


해우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돌아오는 한결같은 신의 대답에 여는 신이 해우를 내쫓았거나, 줘버렸거나, 어쩌면‥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확신했다. 어느 철없는 이 같으면 그저 속상함에 그쳤을 수 있었겠지만 여에게 해우는 애완동물 그 이상이었다. 제게 와준 첫 생명이었으니까. 급기야 여는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툭툭 흘리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데, 내가 해우 아끼는 것 알면서. 그게 그렇게 싫었어? 아니면 그저 며칠 내 몸을 탐할 빌미가 필요했던 거야?"


옷소매를 쭈욱 빼내어 눈물을 꾸역꾸역 닦아내는 모습에 신은 당황해서 여를 끌어당겨 안았다. 해우가 싫었던 것도 아니었고 여의 몸을 탐할 빌미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안 그러면 네가 자꾸 아프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사실 해우라는 이름부터가 여와 함께할 수 없게 하려 지어진 것이었다. 신이 상장군일 때에, 그러나 여가 아닌 주군을 모시었을 때에, 그 옛날 궁에도 반려동물이 있었다. 그냥 선물로 받아온 것이었는데 궁에서 키우려니 마땅한 반려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들 꺼리는 분위기이니 아이에게 주어야지, 했는데 선왕께서 후사가 없으셨던 탓에 -혹은 박 중헌이 모두 독살한 탓에-집안의 어린아이라곤 여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 해우란 이름의 강아지였다.


해우를 안아들 때마다 여의 얼굴에 꽃이 활짝 피는 것을 보며 신은 진정 해우(解憂)구나, 하였다. 하지만 정작 그것은 신에게는 작용하지 못했다.


"에취!"


처음에는 재채기를 자주 하는 것도, 종종 목 부근에 발그스름한 뭔가가 올라오는 것도 일시라 넘기기만 했다. 하지만 여가 해우를 품에 안아드는 횟수가 늘수록 여의 상태는 악화되기만 했다. 해우와 가까워지면 질수록 여의 상태가 안 좋아진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선왕의 부탁으로 그를 졸졸 따라다니던 신이었다. 전장에 나가있으며 온갖 고초를 다 겪었던 그는 종종 병사들을 위해 의학 서적을 읽으며 군의를 자처하기도 했었는데 상태를 빨리 알아챈 것엔 그것의 이유도 있었다 하겠다.


결국 그것을 보다 못한 신은 해우를 선왕 허락 하, 사가私家로 데려가고 말았다. 집에 있는 또 다른 해맑은 이, 선이는 해우를 참 좋아했다만 여가 하루 종일 울고만 있는 걸 보는 것 또한 그가 아픈 것만큼이나 고역이었다는 것이다.



긴 얘기를 담담히 듣고 있던 여는 표정을 딱 굳히며 팔짱을 껴 불만의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나 알레르기 없어."


물론 기억 안 나겠지. 한숨을 푹 내쉰 신은 해우가 쓰던 깔개를 들쳐와 여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무슨‥, 아‥! 에취!"

"이러고도 없어? 어제도 목부터, 손목부터 발갛게 올라서 갈 때마다 모가지 붙들고 닥닥 긁어대서 손목을 그렇게 붙들었는데."


다다다 쏟아지는 신의 말에 여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신은 무의식적으로 목을 긁으려 올라가는 여의 손목을 붙들고 나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해우는 선이한테 맡겼으니 종종 보러 가자."


그 말에 여는 모두 저를 위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잠시 잊고 있었던 것만 같다.


"미안해."


여는 젖어있던 눈가를 싹 문질러 닦고 신의 뒷통수를 잡고 입에 제 입을 갖다대 눌렀다.


"왜, 또. 무슨 바람인데."


미지근한 신의 반응도 이해가 되는 것이 해우가 온 뒤로 한 번도 해준적 없던 것이었다. 여를 눈을 가늘게 뜨고 저를 노려보는 신을 향해 흐흥, 하고 웃어보였다. 결국 또 여의 이쁜 짓에 넘어간 것은 신이었다.


"지금이라도 보러 가?"

"응!"


이러면 말도 않고 떼어놓아버린 의미가 없는데. 분명 진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인은 되찾았으니, 하고 신은 맑게 대답하는 여에게 마주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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