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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비사자] 고양이 上

1월의 이른 아침, 창문을 열자마자 코 끝에 훅 끼쳐오는 축축한 냉기에 오늘은 눈이 오겠구나, 했다. 여는 종이가방을 하나 꺼내들고서 옷장 한켠에 잘 개어두었던 발깔개를 넣었다. 찻집 청소 같은 잡일까지도 저승사자의 업무 중 하나였기에 찻집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는 비나 눈이 오는 날은 발깔개가 필수였다.


"오늘은 좀 이르네‥."


졸린 눈을 비비적대며 신이 휘적휘적 여에게로 걸어오자 여는 그의 머리통을 손으로 조심스레 감싸고 이마에 촉, 입을 맞추었다. 잘 다녀올게, 몸 조심하고, 그런 유의 따스한 말은 딱히 오가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여의 예상대로 하늘에서는 막 눈이 시작되는 참이었다.딱 성가실 정도로만 모자 위에 올라앉던 눈은 여가 찻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눈보라가 되어있었다.


깔개 들고 오길 참 잘 했네.

여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깔개를 입구에 펼쳐놓았다. 은근 찻집과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에 그것을 만족스레 바라보던 여는 갑자기 미간을 팍 구겼다. 여의 시선이 멈춘 깔개의 모서리에는 실밥이 살짝 삐져 있었다.


"아..."


여는 입술을 꾹 깨물며 그 옆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그리 길지도 않은 손톱으로 뜯어진 실밥을 뜯어내려 애쓰고 있는데 문득 시선을 돌리니 낮은 데에서 보는 찻집이 새삼 훤한 느낌이었다. 감탄하며 오른쪽 끝에서부터 왼쪽 끝까지 시선을 흘리는데 식탁 다리 쪽에 회색의 덩어리가 웅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그렇게 청소를 안 했던가,

여는 깔개의 실밥을 뜯어내길 멈추고 그 쪽으로 다가가 그것을 덥썩 움켜잡았다. 하지만 그 덩어리는 생각보다 컸고 따뜻했으며 심지어는 움직이기까지 했다.


"히익."


여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고 한 발짝 물러섰다. 그 덩어리는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곧 여를 향해 돌아섰다.

먀옹, 고양이였다.

처음에는 죽은 동물이라 이곳에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문 밖으로 밀어내려고 안아들었더니 옅게나마 심장 박동과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나 살아있어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는 결국 안아들었던 고양이를 다시 데리고 들어와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그냥 찻집도 아니고 저승사자의 찻집엔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신이 자주 하는 말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보다 동물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저승사자를 본 동물들은 모두 위협하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래서 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눈 앞에서 움직이는 생명체에 들뜨기 시작했다. 새롭다. 신기하다. 놀랍다. 예쁘다. 털 색도 마냥 회색이 아니고 잘 보면 푸른 빛이 살짝 돌았다. 눈은 특히나 여의 마음에 들었는데 화난 도깨비의 어깨죽지에서 보았던 푸른 빛 같은, 초록색과 파란색을 섞은 묘한 빛을 띄고 있었다.


"‥ 너 나랑 같이 살래?"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눈을 마주보고 있자니, 또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눈보라를 보고 있자니, 도저히 이 예쁜 아이를 내보낼 자신이 없었다.

먀옹, 여는 짧게 우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서 그래, 그러자! 하고 소리치며 아까 그렇게 공들여 정돈했던 깔개를 확 걷어왔다.


"일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


찻집 한켠에 깔개를 깔아주고 고양이를 그 위에 살며시 내려놓은 여는 그제야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고양이를 위해서였다지만 눈길에 발이 축축하게 젖어서 들어오는 망자들의 발자국이 찻집에 남으면 남을 수록 여의 표정은 어두워지기만 했다.


저녁 시간, 업무를 모두 마치고 표정이 많이 어두워진 여는 막대걸레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온통 눈 녹은 물인 바닥에 한숨만 나왔지만 깔개 위에서 편히 자고 있는 고양이와 손수 걸레질을 해야 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여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바닥이 모두 깨끗해진 후, 더러워진 걸레까지 처리하고 나서야 여는 깔개와 함께 고양이를 조심히 안아들었다. 그러다가 남편 김신이 이 고양이를 받아들여줄지 걱정이 든 것은 집 앞에 도착해서였다. 물끄러미 고양이를 바라보던 여는 눈을 또르르 굴리다 정면으로 부딪히기로 결심했다. 여에게 화나봤자 여가 침대 속으로 살살 기어들어가면 풀리고 그러는 게 도깨비 김신이었으니까.


"어, 왔‥."


먀옹,

그 하나의 짧은 소리에 조용하고 평화롭던 집이 시끄러워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신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고양이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는 여의 앞까지 훅 이동해왔다.


"너 품에 그거 뭐야."

"고양이."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쓸 데 없이 해맑은 여의 대답에 신의 미간이 보기 싫게 구겨졌다.


"내보내."

"밖에 눈 오는데?"

"그치게 할 테니까 내보내."


남편이 도깨비인 것을 잠시 망각했던 자신에 여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추운데, 라고 하면 또 따뜻하게 할게, 라고 하겠지. 한참 추워야 할 1월에.


"내보내."


또 다시 떨어진 신의 명령에 여는 울상을 지었다. 울상 안 돼, 애교 안 돼, 억지 안 돼. 신은 고양이를 품에 꼭 안는 여를 향해 팔짱을 딱 끼고 버텨섰다.


"으응, 싫어어‥."


분명 애교는 안 된다고 했을 텐데 몸을 비비꼬는 여에 신은 기가 찼다. 신이 애교에 흔들리지 않자 급기야 오늘은 뭐든 할 테니까, 하고 빈 손으로 잘 메어져 있던 넥타이를 풀어재끼는 여에 결국 신은 고양이를 쫓아내는 걸 그만두었다. 신이 고양이에 대한 안案을 허락하자 여는 잔뜩 신이 나 고양이를 안고 온 집 안을 돌아다녔다. 그에 반해 신은 마냥 어린 아이 같은 여를 걱정스레 바라볼 뿐이었다.


"음, 얘 이름은...!"

"해우."


여의 말을 가로막아선 것은 이후 고양이에 관심도 없던 신이었다. 여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고양이를 향해 해우야, 하고 외쳤다.

그렇게 회색 고양이는 '해우' 라는 이름을 가지고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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