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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예모리] 둥근 모양

오버워치

"울었구나."


남에게 우는 모습,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하는 모리슨의 성격에 흔적 따위 남길 리 없었으나 레예스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그가 울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딱히 많이 울지 않더라도 모리슨은 울면 그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조금 눈 밑이 부어올랐다.


"아직도 아픈 거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리슨의 모습에 레예스는 푸, 한숨을 쉬고는 짧은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렸다. 레예스가 무감각한 것인지, 모리슨이 예민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레예스와의 잠자리 앞에서는 젊은 시절 받았던 군인 강화 프로그램도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화는 그도 받은 것이고 뒤가 단련 따위 되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모리슨은  오버워치로 출근하기 위해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그 위로 옷과 무기들을 얹었다.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레예스는 곧 따라 옷을 챙겨 입고 산탄총의 탄창을 허리에 둘렀다. 짧은 머리카락 위로 검은 비니를 얹고 나자 레예스의 준비가 끝났다.


"가시죠, 레예스."


모리슨이 정중하게 레예스를 불렀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꾸준히 말해왔지만 모리슨은 도대체 말을 듣지 않았다. 한번은 돌아와서 옷 갈아입을 시간도 주지 않고 관계를 치러봤으나 그때도 매한가지였다. 덕분에 레예스는 모리슨이 존댓말로 제게 매달리는 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런 식의 관계는 없었다.


"가지."


이미 오버워치 내부는 비상이 걸려 다들 뛰어다니고 있었다. 레예스는 무기고에서 산탄총을 몇 자루 더 챙기고 요원들을 따라 전장으로 향했다.


이번 반란을 진압하고 나자 잭 모리슨을 보는 요원들, 고위직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매 순간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이루어내는 그의 두뇌와 가브리엘 레예스의 것과는 달리 따뜻한 리더십은 가히 존경받을만했다. 모리슨의 공적에 레예스도 함께 기뻐하며 모리슨을 축하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곧 있을 사령관 선발에 불안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맞지 않는 데다가 만약 모리슨이 뽑힌다면 한참 나중에서야 오버워치에 들어오게 된 그의 밑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용납해주지 못하니까.



"축하해, 잭."


결국 사령관은 모리슨이 되었다. 전혀 뜻밖인 결과는 아니었지만 레예스는 참기 힘들었다. 모리슨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전투에서도 모리슨 못지않은 공적을 세운 레예스였고 저번 전투가 끝난 후, 다들 모리슨이 있더라도 초대 사령관은 가브리엘 레예스가 될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축하 자리에서 축하한단 말을 남긴 채 혼자 조용히 빠져나온 레예스는 벽에 기대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리슨이 사령관이 된 후, 참 많은 게 바뀌었다. 오버워치에는 질서가 잡히기 시작했고 그 위상도 드높아졌다. 레예스는 다 좋았다. 다 좋았는데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달라진 모리슨의 태도였다. 직급에 따라 호칭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모리슨만큼은 레예스를 다른 요원들과 다르게 대우해줄 것이라 믿었다.


"가자, 레예스."


모리슨은 레예스에게조차 사령관이었다. 그는 풋내기의 모습은 버리고 사령관의 위엄으로 무장했다.


질투심과 배신감에 멀어 관계가 틀어진 후, 레예스는 모리슨에게 말도 없이 블랙워치로 자리를 옮겨버렸다. 레예스의 분노를 짐작한 모리슨은 레예스를 피하기 시작했고 레예스 또한 그랬다. 둘은 그렇게 멀어졌다.



"오버워치와 블랙워치의 첫 협력이다."


이번 옴닉옴의 테러 사태에 대해서 작전안이 발표되고 간부로서 회의에 참가하게 된 모리슨은 그 말을 듣고 심장이 거세게 반응하는 걸 느꼈다. 오버워치의 사령관인 모리슨은 블랙워치의 수장인 레예스와의 대면을 피할 수 없었다. 모리슨은 오버워치 작전실 한가운데 놓인 원탁 앞 의자에 가 앉았다. 차마 문쪽을 향할 수 없어 등 돌린 모리슨에게서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철컥, 산탄총 장전 소리가 들리고 총구가 모리슨의 머리를 향했다가 다시 바닥을 향했다. 모리슨은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의자를 느리게 소리가 난 쪽으로 돌렸다. 가브리엘 레예스, 여전한 그였다.


"오랜만이네."

"정말 오랜만이군."


오버워치와 블랙워치의 협동작전이 시작되었다.

매일같이 옴닉을 처치하고 옴닉옴을 부수었다. 과연 모리슨과 레예스의 조합은 대단했다.


그러다 협동작전의 기일을 이틀쯤 남겨두었을 때였다. 레예스는 별이 총총 뜬 늦은 밤에 하지도 않는 담배를 무는 모리슨에게 말을 걸었다.


"잭."

"아직도 그렇게 부를 수 있구나, 새삼 놀랍군."


모리슨은 아무렇지 않은 척,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문 채 웅얼거리며 대답하였다. 레예스는 그가 담배를 익숙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으나 곧 그것이 그의 일상이나 되는 듯, 무심한 손놀림으로 모리슨에게 담배를 요구했다. 모리슨 또한 침착한 태도로 일관하며 담배를 레예스의 입에다 물려주었다. 곧 레예스가 라이터를 달라는 시늉을 하자 모리슨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반대편으로 세게 던져버렸다.


"이봐!"


뭐 하는 거지, 지금? 레예스가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모리슨에게 따져들자 모리슨은 그의 검은 눈동자가 보고 있는 쪽으로 잠시 눈길을 주곤 레예스 쪽으로 다가갔다.

이거, 라이터가 없어서 미안하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문 채, 레예스의 얼굴로 가까이했다. 검지와 중지 사이로 담배를 집어 고정시키고 레예스의 담배에 갖다 대자 레예스의 담배도 타기 시작했다. 레예스는 당황스러웠다. 항상 정의에 살고 정의에 죽던 모리슨이 레예스나 할만한 짓을 하다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실감했다. 한편으론 속의 것이 꿈틀하기도 했다. 담배를 빨아들이는 저 별개의 생명체 같은 입술에 말이다.

모리슨은 떨리는 심장을 누르고 여유로운 척 담배연기를 눈으로 좇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쿨럭쿨럭, 급하게 터져 나온 기침 소리에 모리슨도, 레예스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예스 앞이라 조금 그런 척하려고 했는데 역시 담배는 모리슨에게 익숙한 물건이 아니었다. 레예스는 모리슨의 손에서 담배를 뺏어 자신의 것과 함께 바닥에 내던지고 발로 비벼 불을 껐다.


"쓸데없는 짓 마라, 잭."


레예스는 화난 목소리로 기침 때문에 얼굴이 잔뜩 붉어진 모리슨을 다그쳤다. 모리슨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가 놓으며 레예스 앞에 똑바로 섰다.


"가브리엘, 날 먼저 원망한 건 네 쪽이었잖아."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모리슨의 말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레예스는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이 모리슨과 저를 갈등으로 몰아넣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


짧은 사과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는 모리슨과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랬다. 모리슨은 레예스의 사과하는 모습에 이질감을 느낀 듯 흠칫 몸을 떨었다.


"가브리엘."


하지만 다시 들려온 모리슨의 목소리엔 잔잔한 웃음기가 끼어 있었다.


"작전이 끝나고도 다시 날 보고 싶으면 그래도 돼."

"‥ 고맙다."


이것도 레예스 답지 않은 말이었지만 꼭 해야 할 말이었다.


그리고 작전의 기일, 둘은 다시 한번 만났다. 모리슨은 담배를 꼬나물지 않았고 레예스는 총구를 들이밀지 않았다. 다만 어두운 밤에 달을 길잡이 삼아 짧은 산책을 다녀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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